제목 | [통권 154호] 영국 BBC의 수신료 제도 연장 논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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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타 | 등록일 | 02.06.27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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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BBC는 영국 사회에서 무엇이길래 이렇게 특별대접을 하는 것일까?" 영국에 사는 외국인이라면 이런 질문을 한두 번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최근, 특히 민영방송 사장 출신인 그렉 다이크(Grek Dyke)가 사장으로 들어선 요 몇 년 동안 BBC는 그야말로 상종가를 달리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이 최근 영국에서는 '때아닌' BBC 수신료 연장론이 나오면서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수신료 제도 유지 BBC의 수신료 징수 연장론은 주무 부처인 문화부의 테사 조엘(Tessa Jowell) 장관의 발언에서 비롯되었다. 조엘 장관은 최근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2006년에 끝나는 BBC의 수신료 징수를 이후 15년간 더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BBC 재원조달 방식의 급격한 변화는 있을 수 없다."면서 "수신료 재원 없는 BBC는 가능하지도 또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수신료 제도 연장의 근거는 BBC가 영국 사회에서 신뢰의 상징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엘 장관은 최근 BBC가 취한 여왕 즉위 50년을 기념하는 골든 주빌리 관련 특집 방송들을 그 사례로 들면서 "BBC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BBC가 수신료 수입이 아닌 다른 재원에 의해 운영되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BBC가 수신료 징수를 통해 마련하는 재원은 연간 23억 파운드에 달하며, 이를 위해 텔레비전 수상기 보유 가정마다 일 년에 109파운드의 수신료를 내야 한다. 이런 수입은 현재의 특허 기간인 2006년까지 계속되며, 이후의 특허갱신 등 BBC와 관련된 제반 문제는 관례로 볼 때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통상적인 BBC 특허장 갱신의 핵심사안은 수신료 문제다. 지금까지는 대개 수신료를 얼마로 할 것인가가 논의의 대상이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수신료 제도를 지속할 것인가가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즉, 수신료제도 자체가 문제다. 이유는 방송환경의 디지털화다. 디지털방송의 등장은 적어도 채널의 숫자 측면에서 볼 때 공영방송인 BBC의 지위를 수백 개 채널 중의 일부분으로 축소시켜 놓고 있다. 그만큼 BBC의 위치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때문에 2007년 특허장 갱신 때는 지금의 수신료에 의존하는 BBC 재원정책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여론을 형성하면서 제기되어 왔다. 현재 가장 설득력 있게 거론되고 있는 새로운 재원조달 방식은 수신료에 이용료 부가 방식을 가미한 이중재원 방식이다. 이런 가운데 불거져 나온 조엘 장관의 수신료 징수제도의 연장 발언은 느닷없는 것으로 논란을 불러오기에 충분한 것이 사실이다. 디지털 환경 속 공영방송의 위상이 문제 당장에 야당인 보수당이 반발하고 나섰다. 보수당 그림자 내각의 문화부 장관인 팀 유(Tim Yeo)는 "재원조달 방법을 비롯한 BBC의 장래 위상과 관련한 문제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인 지금 조엘 장관이 이처럼 수신료 연장 발언을 함으로써 논의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즉, "연구와 토론이 제대로 진행되기도 전에 조엘 장관이 가능한 대안의 싹을 교묘하게 잘라 버리는 것이며, 이는 현 정부가 비판에 귀를 막고 시청자와 방송의 이익을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BBC Radio 4의 뉴스 프로그램인 〔Today〕에 출연한 유 장관은 "현재의 수신료는 사실상 텔레비전 조세"라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BBC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보고 듣지 않아도 텔레비전 수상기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수신료를 내야 하는 조세라는 것이다. 이런 조세 형식의 수신료는 공중파 채널 5개 중 2개가 BBC였던 아날로그시대에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이미 수백 개의 채널이 존재하고 시청자들이 BBC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채널들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다채널 시대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더구나 다음 특허장 기간이 시작되는 2007년이면 대부분의 가정이 디지털로 이양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신료 제도의 유지는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따라서 수신료를 대폭 인하하고 대신 BBC를 시청하는 시청자에 한해서 이용료를 부가하는 복합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산된 정치적 발언? 또 다른 반발은 조엘 장관의 발언이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발언이라는 혐의에 있다. BBC의 특허장 기간이 아직 4년이나 남았고, 특허장 갱신시 재원과 관련한 문제에 대한 논의가 통상 허가 만료 2년 전에 시작된다는 점에서 볼 때 그의 때이른 허가갱신 발언은 뒤에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BBC의 미디어 전문기자인 토린 더글라스(Torin Douglas)는 "정부가 BBC를 가능하면 정부의 영향권 아래 두고 싶어하는 것이며, 특히 정치적으로 곤란한 일이 있을 때 BBC를 현 정부의 입장을 지지할 수 있도록 묶어 두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시각은 BBC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는데, 최근 정부가 BBC에 대해 취하고 있는 일련의 태도에서 그런 기미가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BBC 디지털 전략의 최대 관건인 BBC 3에 대한 BBC측의 계획을 질질 끌면서 승인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더 미묘한 문제는 BBC에 대해 벌금부과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데 있다. 이 문제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새 커뮤니케이션법의 초안에 명시된 규제기구 Ofcom의 BBC에 대한 규제권과 관련 있다. 초안은 Ofcom이 BBC에 대해 다른 민영방송과 똑같이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 및 규제권을 갖도록 한 데서 비롯된다. 즉, Ofcom은 BBC가 규정에 어긋난 프로그램을 방송할 경우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문화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세부규정을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나 정책의 방향은 BBC도 벌금부과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데 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정부는 BBC에 대해 당근과 채찍의 강온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부측에서는 이를 '정책의 균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엘 장관의 발언을 정치적 계산으로 보는 또 다른 시각은 민영방송에 대한 견제책이라는 분석과 관련 있다. 즉, 이미 BBC의 차기 재원조달 방식에 대해 방송계의 여론이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너무 많이 진행된 느낌이 있어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듯이 민영방송 및 온라인 업체들은 물가 상승률을 넘어서는 수신료율의 인상을 허용하고 있는 현재의 정책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신기술이 주도하던 세계 경기의 침체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광고매출 부진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이들은 BBC에 대한 이런 수신료 정책은 '정부지원(state aid)'으로서 명백한 시장불공정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BBC가 수신료 수입에 의해 디지털 방송을 운영하는 것을 '정부지원'으로 볼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수신료 징수제도의 유지에 대해서는 노동당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있다. 하원 미디어위원회 위원장인 제럴드 카우프만(Gerald Kaufman)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오랫동안 BBC의 민영화를 주장해 온 인물로, 차기 특허장에서 BBC의 수신료 징수를 유지하는 일이 벌어져서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수신료 고수 의견도 만만찮아 한편, 제1야당인 보수당과 달리 제2야당인 자유민주당의 상원 대변인인 맥널리 경(Lord McMally)은 보수당의 반발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대감의 표현"이라며 조엘 장관의 입장을 두둔했다. 그는 "적절한 재원으로 고급의 공영방송을 유지하는 것은 영국 사회의 혜택"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BBC에 대해 조금만 지지하는 내용을 내놓으면 보수당이 반대하는 것은 BBC가 영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문화와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근간이라는 점을 무시한 무조건적 반대"라는 것이다. 당연히 시청자 단체들은 조엘 장관의 발언을 환영하고 있다. '시청자의 목소리(Voice of Listeners and Viewers Association)'의 조슬린 헤이(Jocelyn Hay) 회장은 "BBC의 안정적인 지위를 위해 수신료에 근거한 재원조달 방식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BBC가 다른 재원에 의존할 경우 BBC의 독립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BBC가 조엘 장관의 발언을 환영한 것은 물론이다. 전문가들은 BBC의 수신료 문제가 조엘 장관의 최근 발언이나 보수당의 희망사항 어느 한쪽의 뜻대로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으로 관련 부처의 주요 직책의 인사개편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이나 여론의 중심이 어느 쪽으로 몰릴지 쉽게 점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 그러나 조엘 장관의 발언은 향후 논의의 방향과 폭을 미리 좁혀 놓고자 하는 계산된 행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ㅇ참조 : Financial Times 2002. 6. 4. / BBC 2002. 6. 5. / Euro Media 2002. 5. 24. / Guardian 2002. 5. 31., 6. 3., 6. 5. ㅇ작성 : 김사승(영국 통신원, s.kim1@ntl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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