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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vs 비영어, OTT 시장의 콘텐츠 점유 추세와 전망

김종원 (제레미레터 대표)

스트리밍 또는 OTT로 명명하는 미디어 산업의 ‘콘텐츠 플랫폼’은 한편으로는 ‘직접 소비자 전송(Direct To Consumer)’ 비즈니스라 부른다. ‘D2C’는 콘텐츠 제작 후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고 글로벌 가입자에게 직접 전달한다는 개념이다. 이 용어는 5년 전 월트디즈니(Walt Disney)가 디즈니+(Disney+)를 론칭하면서 강조한 말이다. 5년이 지난 2024년 현재, OTT 시장은 이 시장을 개척한 넷플릭스(Netflix)가 여전히 가장 높은 위치에 서있다. ‘D2C’ 전략을 강조했던 디즈니 등 레거시 미디어 진영은 여전히 미국 시장의 극장, 케이블TV, 지상파 등 기존 유통 플랫폼을 수익 창구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OTT 전용 콘텐츠’ 제작에 투입될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넷플릭스의 이유 있는 해외 투자

이때 넷플릭스는 눈여겨 볼만한 투자방식을 보이고 있다. 앰피어 애널리시스(Ampere Analysis)가 지난 3월 분석한 바에 따르면 넷플릭스 콘텐츠 예산의 절반 이상이 북미 지역 이외에 투입되고 있다. 2023년 넷플릭스 전체 콘텐츠 지출 규모인 150억 달러 중 51%가 국제적으로 제작되거나 구매된 TV시리즈 및 영화 콘텐츠에 할당되었다. 전 세계 스트리밍을 주도하는 넷플릭스의 가입자는 70%가 미국 외 지역에 존재한다. 그리고 최근 매 분기 늘어나는 신규 가입자의 80%가 국제 가입자들이다. 미국에서 제작된 미국인들 대상의 콘텐츠만으로는 70% 가입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국제 콘텐츠 투자는 지역별 가입자 확보 수준과 관계가 높다.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이 가장 유료 고객수가 많고 아시아 지역이 그 다음이다. 유럽은 넷플릭스 총 콘텐츠 투자의 35%를 차지한다. 특히 영국과 스페인은 가장 투자가 높은 국가로 두 시장 모두 전략적 생산기지를 설립하였다. 아울러 영국과 스페인 모두 넷플릭스에 세금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자국 콘텐츠 제작 산업의 글로벌 확장을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콘텐츠가 넷플릭스 안에서 보여주고 있는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 넷플릭스는 2024년 3분기 2억 8,272만 명의 가입자를 발표하였다. 특히 3분기 가입자는 총 500만 명이 증가했는데, 아시아(APAC, Asia-Pacific) 지역의 기여도가 가장 높았다. 넷플릭스는 한국, 일본, 인도 등의 콘텐츠에 대한 매력도를 강조하며 <무도실무관> , <흑백요리사>등이 언급되었다. 여전히 한국 콘텐츠에 대한 넷플릭스의 기대와 가입자 견인력이 매우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비(非)영어의 힘: 한국과 스페인

전체 지역의 콘텐츠 측면에서 한국 콘텐츠의 파급력을 평가해보자. 지난 9월 발표된 패럿 애널리틱스(Parrot Analytics)의 콘텐츠 파노라마(Content Panorama) 데이터에 따르면, 넷플릭스 전체 콘텐츠 라이브러리 중 38%가 미국에서 제작된 콘텐츠이고, 영국 6%, 인도 10%, 일본 5%, 한국 4%, 스페인 3% 순이다. 2024년 3분기 기준 넷플릭스 2억8천만 가입자 중 1천만 명을 차지하는 한국 시장의 위상으로 볼 때, 4% 수준의 콘텐츠 점유는 엄청난 수준이다. 이는 한국 콘텐츠가 아시아 시장 전체와 미국을 포함한 유럽 등에서 ‘통하는’ 콘텐츠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림 1] 넷플릭스 국가별 콘텐츠 제작비율 비교 (자료: Parrot Analytics, 2024.9.1.)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소개한다. 지난 3월 리서치 회사 옴디아(Omdia)는 비영어권(Non-English) 콘텐츠를 대상으로 넷플릭스의 콘텐츠 점유 수준과 시청 점유율을 비교한 분석을 내놓았다. 이 데이터 분석에 의하면 넷플릭스 상위 18,000개의 타이틀 중 한국어 콘텐츠는 6.3%를 점유하고 시청 시간은 8.6%를 차지했다. 일본 및 타 언어권 콘텐츠들과 비교하면 분명 두각을 나타내는 수치이다. 스페인의 경우 5.24%를 점유하고 시청 시간의 8.3%를 차지했다.

<오징어 게임>이후 한국 콘텐츠에 대한 넷플릭스 투자가 꾸준히 증가한 것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콘텐츠 투자도 늘고 있다. 유럽 콘텐츠 중 스페인 투자는 37%를 차지하는데 영국 18%, 이탈리아 16%, 프랑스 12%, 독일 8%와 비교하면 스페인의 중요도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스페인 콘텐츠의 인기는 언어의 사용 범위와 무관하지 않다. 스페인어는 세계에서 중국어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고 4억 명 이상의 사용자가 20개국에 퍼져 있다. 미국에서만 4천만 명 이상이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2024년 1월 넷플릭스의 2023년 4분기 수익 발표에서 CFO인 스펜서 노이만(Spencer Neumann)은 스페인 콘텐츠의 기여도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스페인 오리지널 시리즈인 <베를린(Berlin)> 과 오리지널 영화 <노웨어(nowhere)> 등이 유럽, 중동 지역 가입자와 매출 성장을 견인한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스페인의 생존 스릴러 <노웨어> 는 2023년 가장 많이 본 비영어권 영화로, 7,790만 뷰를 기록했다. 한편, 스페인의 대표적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은 <종이의 집(La Casa De Papel)>이다.

[그림 2] 언어별 콘텐츠 타이틀 대비 시청 시간 비교 (자료: OMDIA, 2024.3.1.)

이 시리즈는 넷플릭스의 ‘역대 가장 많이 시청한 해외 시리즈 10개’ 중 3개를 차지한다. 3개를 합치면 한국의 <오징어 게임> 의 시청횟수(viewing rate)와 비슷하다. 2024년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릴러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Society of the Snow)>은 제 96회 아카데미상 국제 장편 영화 부문 및 메이크업, 헤어스타일링, 오리지널 스코어, 시각 효과 부문의 예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림 3]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Society of the Snow)>포스터(자료: Netflix)

한국과 스페인 콘텐츠는 넷플릭스 글로벌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시청 시간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가입자 충성도에 미치는 영향도를 고려하여 넷플릭스는 국가별 콘텐츠 투자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엔더스 애널리시스(Enders Analysis)가 2022년 분석한 데이터를 보면 스페인 콘텐츠의 시청 시간은 전년대비 64시간에서 123시간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반면 한국 드라마는 <오징어 게임>이후인 2022년 시점 84시간에서 93시간으로 소폭 늘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 콘텐츠의 활약이 다소 주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합하면 자막이나 더빙으로 시청이 가능한 한국 등 비영어권 콘텐츠의 소비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지난 2023년 미국에서 전체 OTT 시청 소비의 3분의 1이 비영어 타이틀이었다. 버라이어티(Variety)의 보도에 의하면 2023년 미국 비영어 SVOD 점유율은 전체의 33%를 차지했다. 특히 한국 콘텐츠가 이러한 흐름을 주도해 왔다. 넷플릭스 이외에도 새롭게 부상하는 무료 OTT인 FAST(Free Ad-Supported Streaming TV)도 비영어 콘텐츠 확산에 기여했다. 전통적인 영어 네트워크 안에서의 콘텐츠 흐름이 외국어 콘텐츠로 채워지는 것은 문화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OTT 산업의 긍정적 영향력이다.

영국을 통한 영어 콘텐츠 점유율 확대

그런데 최근 5월 분석 데이터를 보면 이러한 추세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패럿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22년 11월에 외국어 시리즈의 미국 수요 점유율이 정점을 찍고 2023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패럿 애널리틱스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장기적 추세의 변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오징어 게임> , <기생충> , <종이의 집>등 대표적인 비영어권 콘텐츠 ‘대작’들이 출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특히 2023년을 강타했던 미국 할리우드의 작가 및 배우의 장기 파업 동안 미국 콘텐츠 제작량이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비영어 콘텐츠의 수요 감소는 이례적이다.

[그림 4] 월별 비영어권 콘텐츠 수요 추이 분석(자료: Parrot Analytics, 2024.5.30.)

넷플릭스 글로벌 가입자들의 시청 행태 보고서(What We Watched: A Netflix Engagement Report)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상위 4개의 시리즈는 모두 영국에서 제작된 ‘영어권’ 콘텐츠들이다. 비(非)오리지널을 포함한 한국 시리즈는 <눈물의 여왕> 과 <기생수>가 각각 14위, 20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림 5] 넷플릭스 2024년 상반기 시청률 순위 (자료: 넷플릭스, 2024.9.15.)

흥미롭게도 넷플릭스의 콘텐츠 지출은 지난 2년 동안 감소했다. 2022년 넷플릭스는 콘텐츠에 약 167억 달러를 지출했는데, 이는 2021년보다 4.6% 감소한 수치이다. 2023년 170억 달러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할리우드 작가 파업으로 인해 결국 130억 달러에 그쳤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연간 영국의 콘텐츠 제작에 투입하는 자금은 60억 달러 수준으로 25억 달러 규모인 한국보다 2배 이상 높다. 2024년 상반기를 강타한 영국 콘텐츠의 증가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 콘텐츠는 영어 콘텐츠로 1년간 여파를 미친 미국 헐리우드 파업의 공백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한국이 타 국가보다 저렴한 제작비용 대비 스토리와 제작 완성도가 높다는 장점을 지녔다면, 영국의 콘텐츠 생산은 미국 시스템과 유사하다. 넷플릭스 전체 콘텐츠의 64%를 차지하는 영어권 콘텐츠의 일부로서 미국인들의 시청 시간을 점유했다. 콘텐츠 소비의 풍선 효과처럼 영어권 콘텐츠의 시청량 증가는 비영어권 콘텐츠 소비 감소로 이어졌다.

미국에서 영국 콘텐츠 인기는 넷플릭스에 이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Video)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에서 넷플릭스와 아마존에서 영국 시리즈와 영화를 시청하는 횟수가 2023년 2분기에서 2024년 1분기 사이에 40% 급증했고 시청 시간은 4억 시간이나 증가했다. 심지어 아마존은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의 제작사인 영국의 브레이 필름 스튜디오(Bray Film Studios)를 인수하며 영국의 창작 생태계를 콘텐츠 제작의 본거지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영국 콘텐츠 투자 증가가 일시적 활용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비영어 OTT, 경쟁에서 살아남기

넷플릭스의 2023년 하반기 시청 데이터를 보면 당시에는 일본, 한국, 스페인 콘텐츠들이 전체 시청률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6개월을 기준으로 영어권, 비영어권 콘텐츠들이 엎치락뒤치락 한다고 볼 수 있다.

비영어권에 속한 한국 콘텐츠는 스페인, 일본, 인도, 영국 등 타 국가의 콘텐츠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 아마존 등 스트리머들은 가입자 확장과 유지 그리고 광고 상품에 활용할만한 콘텐츠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투자의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다소 주춤하고 있는 한국 콘텐츠의 현재 위상은 다시 올 연말에 넷플릭스에 공개될 <오징어 게임 시즌2>에 의해 새로운 조명을 받을 수 있다.

정책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사례도 있다. 앞서 살펴본 스페인 콘텐츠의 약진의 배경에는 스페인 정부의 지원 정책이 크게 기여했다. 스페인 정부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16억 유료를 투자하는 ‘AVS 허브 계획’을 펼치고 있다. 이 계획은 스페인 정부의 콘텐츠 제작 지원, 인재양성, 규제개혁, 해외 투자 유치 및 마케팅 지원 등을 포함하고 있다. 2021년 정책 결정 당시 스페인의 ‘시청각 부문의 산업 매출’을 3배 높이는 것이 목표였다.

글로벌 OTT 시장에서 한국은 작은 국가이다. 아시아의 문화적 동질성과 한국 콘텐츠의 스토리텔링 역량으로 현재의 위상이 유지되고 있지만 OTT 산업은 ‘가입자 규모’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상수’라는 점이 언제든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10월 부산에서 개최된 아시아 콘텐츠 및 필름마켓(ACFM) 컨퍼런스에서 넷플릭스의 지배력에서 벗어날 아시아 공동 콘텐츠 펀드 출범 등을 논의한 자리가 있었다. 한국 콘텐츠는 아시아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자양분 삼아, 지속적인 성장과 확장을 위한 동력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김종원 (제레미레터 대표)
국내에서 유일하게 OTT 분야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뉴스레터인 <제레미레터> 를 운영하며 AI 기술 스타트업인 <라이브데이터> 에 재직 중이다. CJ헬로비전,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에서 국내 OTT의 1,2위를 지키고 있는 티빙과 웨이브의 탄생과 성장을 이끌어왔다. 저서로는 <디즈니+와 대한민국 OTT 전쟁> , <쓰리스크린과 소셜티비>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