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온라인으로 다수의 게이머가 경쟁하거나 협동 임무를 수행하는 멀티플레이어 장르가 전 세계 게임 시장의 주류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비디오 게임 엔진 개발 전문 업체 유니티(Unity)가 발표한 ‘2023 유니티 게이밍 리포트(2023 Unity Gaming Report)’에 따르면 멀티플레이어 장르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 User-generated content)’와 함께 2023년 게임 시장을 지배한 인기 키워드 중 하나였다.
게임의 대세가 혼자서 독립적으로 즐기는 싱글플레이어 게임에서 멀티플레이어 게임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야외 활동이 제한되어 홈엔터테인먼트로 여가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게임과 타인과의 소통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에 눈을 돌리는 게이머가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게임 제작사와 퍼블리셔, 스팀(Steam)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고 멀티플레이어 게임 프로모션을 대대적으로 진행한 것도 멀티플레이어 게임 인기 상승에 힘을 보탰다. 특히, 스팀은 이미 출시된 게임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한편, 정기적인 할인 행사를 통해 더욱 많은 게이머가 멀티플레이어 게임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여기에, 과거에는 같은 게임이더라도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과 엑스박스(Xbox), 그리고 PC 사용자가 서로 다른 서버에서 분리되어 게임을 즐겨야 했으나, 이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크로스플랫폼(Cross Platform) 서비스가 확대되었고, 동시에 클라우드 게이밍 기술의 발전으로 PC 사양이 낮은 게이머도 인터넷 환경만 뒷받침된다면 고품질의 멀티플레이어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점 역시 멀티플레이어 게임 시장 성장을 가속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사용자 간의 사회적 연결, ‘소셜 커넥션’이다. 멀티플레이어 게임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새로운 무대를 제공해 준 셈이다. 게임업계는 최근 멀티플레이어 게임 장르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 고품질의 그래픽이나 높은 게임성을 가진 게임의 대량 출시도 있지만, 게임 외적인 요소인 사회적 연결도 시장 성장에 아주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AI와 상호작용하는 싱글플레이어 게임과는 달리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사람과 사람이 상호작용하므로 싱글플레이어 게임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의 무수한 변수가 쏟아지고, 그 과정에서 게이머에게 다양한 경험과 재미를 제공한다. 또한, 보이스 채널과 같은 자체적인 소통 시스템을 제공하여, 이용자가 함께 플레이하고 있는 상대방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기본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 역시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수요 증가에 일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정된 패턴이 반복되는 싱글플레이어 게임과는 반대로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는 일부러 연출하기도 힘든 여러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스트리밍 방송 콘텐츠 생성에도 용이하며 시청자에게 매번 색다른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편, 통신 인프라의 발전으로 가정용 콘솔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기기로 멀티플레이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장르적 성장에 힘을 보탰다.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특성상 안정적이고 빠른 인터넷 환경 또는 무선 통신 환경이 필수적인데, 많은 국가가 계속해서 네트워크 인프라를 강화 또는 확대하고 있는 추세이다.
더불어, 가정용 거치식 콘솔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보유하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이 다수 출시되었고, 이에 번거로이 TV에 연결해야 하는 콘솔을 보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멀티플레이어 게임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2023년 10월, 20세의 게임 개발자 지커스(Zeekerss)가 1인으로 개발하여 출시한 인디 협동 공포 게임 <리썰 컴퍼니(Lethal Company)>가 스팀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동료들과 함께 낯선 행성에서 괴물을 피해 자원을 모으는 간단한 규칙의 <리썰 컴퍼니>는 출시 직후 동시 접속자 10만 명을 돌파하며 스팀 멀티플레이어 동시 접속자 순위 4위에 올랐으며, 게임을 플레이한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긍정 평가 97%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리썰 컴퍼니>는 그래픽이 그다지 뛰어나지도 않고, 정교한 컨트롤을 요구하는 게임도 아니다. 하지만 4인 협력이 주요 테마인 <리썰 컴퍼니>는 ‘변수’와 ‘다양성’이라는 특성으로 게이머들을 사로잡았다. 기본적으로는 주인공 캐릭터들이 괴물에 대항할 수 없는 무력감과 음습한 배경이 어우러진 공포 게임이지만,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를 모으면 공포감은 크게 낮아져 부담이 적다.
그리고 동료 중 게임에 익숙하지 못한 플레이어로 인해 발생하는 어이없는 상황, 게임 이해도가 다른 4명의 사람이 모이기에 어느 한순간도 예측하기 힘든 좌충우돌 게임 전개가 코믹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처럼 시트콤 같은 상황이 자주 반복되는 게임의 특성으로 인해 <리썰 컴퍼니>를 접한 게이머는 이 게임을 공포 게임이라기보다는 코믹 게임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으며, 스트리머 간 합동 방송 혹은 스트리머와 시청자 간의 참여 방송 콘텐츠에도 매우 적절한 포맷을 지니고 있다.
<리썰 컴퍼니>는 그래픽이나 정교한 게임성과 같이 게임 그 자체의 특성으로 성공했다기보다, 게임 내에서 연출되는 다양한 인간적 경험과 사회적 연결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리썰 컴퍼니>는 소셜 커넥션이 가장 큰 특징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본질을 극대화하여 성공한 게임으로 평가되고 있다.
<리썰 컴퍼니> 타이틀 이미지 및 플레이 화면 출처 : IGN, Dot Esports<리썰 컴퍼니>가 게임 외적인 요소인 게이머들이 연출하는 인간 군상으로 성공했다면, 2024년 2월 PC와 플레이스테이션5로 동시 발매된 3인칭 슈터 게임 <헬다이버즈 2(Helldivers 2)>는 팀워크와 전략을 중요시하는 게임 내적인 재미로 순식간에 대세 멀티플레이어 게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고품질 그래픽과 4인 코옵(Co-op, 협동 플레이) 포맷으로 게이머들이 적이나 장애물을 제거해 나가는 <헬다이버즈 2>는 게임 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플레이어가 숙련된 역량을 쌓아야 하며, 동시에 플레이어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스트리머와 많은 게이머들이 이제는 마이크 기능이 내장된 PC 헤드셋을 사용하고 있고, 플레이스테이션 콘솔 컨트롤러 역시 기본적으로 마이크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속도감 있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을 플레이할 때 게이머 사이에 원활한 소통을 돕고, 상호 협동을 통한 임무 수행을 통해 스릴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헬다이버즈 2> 타이틀 이미지 및 플레이 화면 출처 : Steam, Game Tyrant한편,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플레이어 사이의 협동이 매우 중요한 만큼 <헬다이버즈 2>는 게임 정보를 공유하거나 자신의 수준에 맞는 플레이어를 찾는 커뮤니티가 잘 발달해 있다. 또한, PC와 플레이스테이션5 두 플랫폼으로 출시했지만 서로 다른 기기 사용자가 한 서버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크로스플랫폼 플레이 기능을 제공하여 사용자 풀을 넓혔다. <헬다이버즈 2>는 게임 고유의 재미를 높이는 방향으로 게임 기반을 다지고, 마이크 헤드셋이 널리 보급된 현 상황을 활용함과 동시에 플레이어 친화적인 비즈니스 모델 등 게임 본연의 퀄리티에 집중하여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코지캐빈 스튜디오(Cozy Cabin Studios)’가 제작하고 배급한 게임 <오 디어(Oh Deer)>는 비대칭(asymmetrical) 대전이라는 아직은 다소 생소한 장르를 채택하고, 그간 일반적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독창성을 가미하여 화제를 모았다.
1명의 살인마와 살인마로부터 도망치는 생존자가 대결하는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Dead By Daylight)>로 대표되는 비대칭 대전 장르는 일반적인 멀티플레이어 대전 게임과는 다르게 완전히 불균등한 상황에 놓인 어느 한쪽의 진영을 선택하여 승부를 가르도록 게임이 설계되어 있다. <오 디어> 역시 사슴을 사냥할 수 있는 사냥꾼 1명과 사냥꾼을 피해 다녀야 하는 사슴 4마리가 술래잡기를 하는 1:4 비대칭 게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슴 진영을 선택한 플레이어는 NPC 사이에 섞여 들어 사냥꾼의 타깃이 아닌 것처럼 속이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사냥꾼을 피해 여기저기 숨는 등 다양한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이처럼 <오 디어>는 비대칭 대전의 간판 타이틀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와 유사한 게임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공포 분위기의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와는 달리 동물의 특성을 살린 코믹하고 과장된 동작을 게임에 다수 삽입했다. 겁에 질린 사슴은 방귀를 뀌는 사소하고 유치한 듯한 유머 코드를 넣어 게이머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에 더해, 낮에는 일방적으로 사냥 당하던 사슴이 밤이 되면 폭력적인 ‘웬디고’로 변신하여 오히려 사냥꾼을 공격할 수 있고, 사냥꾼은 산장으로 피신해야 하는 반전 요소를 삽입하여 게임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 보통의 비대칭 대전은 강력한 힘을 지닌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자의 역할이 게임이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지만, <오 디어>는 이 같은 발상을 뒤집는 아이디어로 다양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도록 게임을 설계했다.
<오 디어>는 보통의 멀티플레이어 게임이 정직하게 동일 조건, 동일 환경에서 플레이어가 대전해야 하는 형식이 아닌 쉽게 접하기 힘든 독특한 아이디어로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영역을 확장했고, 동시에 게이머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다양한 게임 내 장치로 출시 직후부터 많은 플레이어를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된다.
<오 디어> 타이틀 이미지 및 플레이 화면 출처 : Steam, Game Tyrant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로 화제의 게임이 된 <리썰 컴퍼니>, 전통적인 온라인 협력 플레이와 게임성에 공을 들여 인기를 끌고 있는 <헬다이버즈 2>, 그리고 비대칭 대전과 코믹한 애니메이션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주목받은 <오 디어>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이 성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각자 성공을 이끈 개별적 특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모두 소셜 커넥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리 NPC 패턴을 다양하고 정교하게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정해진 패턴대로 행동하는 NPC를 상대해야 하는 싱글플레이어 게임과는 다르게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무궁무진한 상황이 연출되기에 게임의 수명이 길다. 그 단적인 예로,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또 다른 대표 장르 MMORPG인 블리자드(Blizzard)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는 2004년 첫 출시 이후 지금까지 20년 넘게 여전히 수많은 플레이어가 동시 접속하여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싱글플레이어 게임에서는 보기 힘든 사례이다.
소셜 커넥션이 게이머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게이머들은 게임 정보 공유부터 시시콜콜한 일상 대화까지 멀티플레이어 게임 채팅창에서 하며, 그 과정에서 자연히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이는 인적 네트워킹과 유대감을 형성하여 게임의 수명을 늘리고 활기를 불어넣는다. 또한, 이러한 소셜 커넥션은 트위치나 유튜브와 같은 소셜 미디어의 빠른 성장 및 스트리밍의 활성화와 어우러져 플레이어의 인적 교류 욕구를 더욱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도 한다. 한마디로,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특성은 소셜 미디어가 발달한 현 상황에 매우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게임 개발사들은 콘솔이나 PC 기종별로 파편화된 서버를 한 곳으로 통합하는 크로스플랫폼 서비스를 계속해서 강화 중이며, 이 역시 소셜 커넥션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더불어, 다양한 게임을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엑스박스 게임 패스(Xbox Game Pass)’나 클라우드 게이밍 등 구독형 서비스의 출시로 게이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멀티플레이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고 있다.
한편, <마인크래프트(Minecraft)>와 같이 UGC 제작을 적극 장려하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게이머들이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닌 게임 콘텐츠 생성에 능동적으로 나서게 만든다. 게이머들은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성하고 공유하면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게임에 대한 일종의 주인 의식을 가지게 되는데, 이 또한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수명을 늘리고 다채로움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소셜 커넥션에 기반하여 기존의 싱글플레이어 게임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다양성을 보여주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현재 게임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장르이다. 과거보다 더 다양한 사회적 교류를 희망하는 게이머들이 늘어나는 만큼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앞으로 더욱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