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을 한껏 뽐내는 하늘 아래,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유노윤호(정윤호). 그런데 갑자기 왠지 모를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정윤호가 당혹스러워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순간, 번쩍하는 빛과 함께 그가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 눈을 뜬 곳은 당최 어딘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두니아’. 건너편 벤치에서 휴식하던 샘 오취리(Okyere Samuel), 광화문을 거닐던 정혜성(정혜성) 등 10인의 출연자들 또한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순식간에 ‘두니아’로 워프1)한다.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가상의 세계에 고립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 게임을 벌이기 시작한다. - 글. 박현정(편집부)
오로지 보유한 소지품을 활용하여 생존해야만 하는 그들의 상황은 마치 미국드라마 ABC <로스트(Lost)>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아이템 획득과 같은 임무수행은 게임과 닮아 있으며, 수풀이 무성한 광활한 대자연의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같기도 하다. 예능 프로그램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장르적 요소가 녹아든 MBC <두니아~ 처음 만난 세계>_이하 <두니아>는 첫 촬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온라인에서만 통할줄 알았던 온갖 ‘드립’과 B급 요소를 지상파에 불러와 매니아층을 형성했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연출한 박진경 PD의 차기작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회사인 넥슨(NEXON)과 MBC의 합작이라는 신선한 조합은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막 4회차 방영을 마친 <두니아>는 기존 예능방식과 전혀 다른 장르와 화면구성, CG를 선보이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든다. 당신이 게이머라면, <야생의 땅: 듀랑고>_이하 ‘듀랑고’ 유저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듀랑고’는 <마비노기>, <마비노기 영웅전>을 개발한 이은석 디렉터의 모바일 신작으로, 알 수 없는 사고로 시공간이 뒤틀려 플레이어들이 현대의 지구에서 야생 세계로 워프한다는 설정의 게임이다. 미지의 세계인 ‘듀랑고’에 떨어진 플레이어들은 생존을 위해 거친 환경에서 삶을 개척하고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가상의 사회를 만들어나간다. 이처럼 ‘듀랑고’는 기본적으로 제시된 세계관 외에 별도의 짜여진 스토리가 없는 샌드박스형 게임2)으로 유저들은 ‘듀랑고’의 생소한 자연환경을 활용해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 식재료를 채집, 요리하여 먹고 부락을 이루어 살아가는 ‘삶’ 그 자체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두니아>는 ‘듀랑고’의 세계관을 단순히 차용하는 것 이상으로 게임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먼저 방송이 시작되기 전, 홈페이지 투표를 통해 출연진의 의상, 소지품을 예비 시청자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는 게임을 시작하기 전 유저와 한 몸을 이룰 캐릭터를 선택하고 커스터마이징하는 과정과 닮아 있어 실제 방송이 진행될 때 <두니아>의 출연진들에게 보다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또한 매회 방송의 끝부분에 <두니아>의 스토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상황을 제시하고 실시간 문자투표를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결정하는 방식도 게임과 닮아있다. 과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대표 코너인 ‘TV 인생극장’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캐릭터의 행동을 시청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 일회성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닌 <두니아>라는 '게임'의 엔딩을 선택해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듀랑고’의 주요 매력 포인트는 <두니아>에서도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 무인도라고 생각했던 <두니아>에 깜짝 등장한 공룡이나 유저들의 게임 플레이를 도와주는 NPC3)인 'K'의 존재, 독특한 사운드 이펙트, 배경음악 등은 두 세계를 모두 경험해본 시청자에게 익숙함과 동시에 신선한 재미를 준다.
<무한도전>의 종영 이후 큰 한 방이 필요한 MBC와 오랜 시간 공들여 개발한 넥슨의 모바일 대작 ‘듀랑고’의 만남은 어떻게 성사 된 것일까. 넥슨 듀랑고사업실 이동열 실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올해 초, 박진경 PD님이 먼저 넥슨에 연락을 주셨습니다.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영될 방송 프로그램에 저희가 개발한 모바일게임 ‘듀랑고’의 컨셉트를 차용하고 싶다고 하셨죠. 사실 처음에는 어떤 그림이 나올지 예상하기 힘들었습니다. 일반적인 게임 방송은 게임을 플레이 하는 영상을 보여주거나 리뷰를 하는 형태가 주였고 방송에 PPL4)로 홍보를 진행하는 게임 프로젝트는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박진경 PD님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굉장히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순한 게임 노출이나 협찬이 아닌 ‘듀랑고’ 게임의 세계관을 반영한 언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은 전혀 접해보지 못한 사례였기 때문입니다.
방송 예정일이 6월이었기에 오래도록 고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죠. 그러나 박진경 PD님의 탁월한 기획력은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로 이미 검증된 부분이었고, 게임 마니아이자 ‘듀랑고’ 유저인 박진경 PD님이 이 게임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죠. 이후 큰 고민 없이 제안을 받아들여 <두니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두니아>는 게임의 장르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맞물려있습니다. 그러나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 넥슨과 MBC의 영역은 분명히 나눠져 있어요. 물론 ‘듀랑고’의 세계관을 적용했기 때문에 최대한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캐릭터 원화나 배경음악, 사운드 효과 등의 리소스(resorces)를 제공하여 ‘듀랑고’의 색이 묻어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방송 자체의 방향성에 대해서 넥슨 쪽에서 크게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두니아>가 ‘언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의도된 연출과 별개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해프닝이나 실제 상황들은 리얼 버라이어티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K라는 캐릭터의 존재나 공룡의 등장과 같은 큰 그림에 대해서는 넥슨과 MBC가 사전 논의했지만, 그 이후에 전개되는 사건이나 흐름에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마치 ‘평행세계’처럼, 넥슨과 MBC는 게임과 방송 영역에 충실하고 있는 거죠.
<두니아>는 기본적으로 ‘듀랑고’의 콘셉트를 가져왔지만, 본질적인 장르 정체성은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얼마나 게임적 요소가 들어가는지보다 예능적인 재미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오롯이 게임의 형태 그대로 재현한다거나, 단순히 게임의 콘셉트만 가져온 것이라면 <두니아>만의 색깔은 없었겠죠. 게임적 특성도, 예능의 재미도 훼손되지 않도록 MBC와 넥슨 모두 신중하게 접근했기 때문에 조율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조금 어려운 점이라고 한다면, 게임과 방송이 제작되는 속도의 차이입니다. 넥슨에서는 <두니아> 방송에 등장한 다양한 아이템을 ‘듀랑고’ 유저들에게 매주 선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게임에서는 이러한 아이템들을 디자인하고 코딩하여 문제없게 서비스하기 위한 사전 준비시간이 필요한 반면 프로그램 제작 환경의 특성상 아이템으로 쓸만한 소재가 방송 목전에 확인되기 때문에 넥슨에서도 전담인력을 배치하여 빠른 호흡에 맞추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로는 ‘전에 없던 시도’라는 점 입니다. 넥슨은 늘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시도해왔습니다. ‘클로져스’, ‘엘소드’, ‘메이플스토리’ 등의 IP를 활용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죠. 넥슨은 IP를 활용한 캐릭터 상품개발 등 OSMU사업에도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두니아>는 지상파 예능과 모바일 게임의 첫 합작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도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도 박진경 PD님처럼 게임을 즐기고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게이머들이 사회의 주요 활동층으로 성장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시청자들의 접근성입니다. <두니아>는 물론 TV로도 시청이 가능하지만, 지금은 본 방송 이후에도 관련 클립들이 유튜브, 네이버TV,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와 동영상 플랫폼에서 공유되는 시대이고 MBC는 그러한 온라인 채널관리에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꼭 온라인 플랫폼을 메인으로 갖고 가지 않더라도 주요 타깃층에게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지상파 방송사의 예능임에도 박진경 PD님의 시그니처인 일명 ‘병맛’으로 불리는 매니악한 포인트가 강점이 될 수 있고요.
먼저 ‘듀랑고’ 유저들은 흥미롭다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방송 자체가 ‘듀랑고’의 게임적 요소를 다양하게 품고 있다 보니, 유저들이 친숙하고 즐겁게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내가 하는 게임의 스토리를 지상파 방송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잖아요.
그러나 게임에 친숙하지 않은 세대나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방송의 콘셉트가 다소 낯설 수 있습니다. 웃음 포인트나 설정 자체가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춰져 있다 보니 특히 연령층이 높은 시청자 분들은 왜 갑자기 사람들이 두니아로 이동했는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없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방송이 거듭될수록 이러한 부분은 자연스레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연령층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어려운 점이기도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두니아>를 통해 게임을 하지 않는 시청자 층도 자연스럽게 '듀랑고'의 세계관이나 게이머들의 문화, 게임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방송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희 게임의 재미를 어느정도 느낄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시도가 지상파 방송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두니아>는 충분히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두니아>의 시청률이 동시간 1위를 차지한다거나 이 방송을 통해 ‘듀랑고’ 신규 유저의 폭발적인 증가와 같은 단기적 성과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넥슨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도의 물길을 텄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습니다.
방송이 진행될수록 ‘듀랑고’의 진짜 재미를 <두니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 반대로 <두니아>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듀랑고’에 반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두니아> 시청자와 ‘듀랑고’ 유저 간의 소통이 가능해지고 어떤 면에서 스토리를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아직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지는 미정입니다. 특히 <두니아>도, ‘듀랑고’도 시청자와 유저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제작진에 의해 미리 결정된 스토리대로 흘러가기를 지향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 또한 <두니아>만이 가진 하나의 매력이기에, 장기적인 관점으로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큰 재미가 있지 않을까요.
<두니아>는 게임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적 요소가 융복합된 신개념 예능입니다. 스토리가 진행되는 드라마 파트에선 영화의 화면 비율을, 예능 파트에선 일반적인 TV 화면 비율을 영상에 적용하기도 하고 비디오게임 인터페이스를 그래픽으로 구현해내기도 하죠. 말 그대로 ‘실험적 예능’ 이기에 앞으로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듀랑고’와 <두니아> 모두 시청자와 유저들이 애정을 가지고 천천히 간극을 좁혀갈수록 복합적 장르의 재미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듀랑고’도, <두니아>도 이제 막 첫 발을 뗀 것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홍보에 집중하고 그 결과에 초조해야할 시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동열 실장은 조급해 하지 않았다.
영상콘텐츠도 모바일게임도 너무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나왔다 사라져버리는 이 시대에 긴 호흡으로 먼 곳을 바라보기는 쉽지 않다.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사업자의 운명이 달라지는 위태한 모습도 닮아있는 시장이다. 그래서 당장의 결과에 매몰되지 않고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여유를 갖고 있는 이 프로젝트가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융합적 실험'과 '장기적 투자'의 역량을 갖춘 사업자들 간의 화학적 결합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어 앞으로도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시도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해본다.
1) ‘휘다’, ‘비뚤어지게 만들다’는 뜻의 워프(Warp)는 과거나 미래의 일이 현재에 뒤섞여 일어나거나 공간이 이동됨을 표현하는 ‘시공간의 왜곡’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2) 오픈 월드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가 마음대로 무엇을 창조해내거나 게임의 룰을 정하는 등의 자유도가 높은 게임.
3) Non-Player Character의 준말.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 플레이어에게 퀘스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도우미 캐릭터를 일컫는다.
4) Product PLacement의 준말. 간접 광고의 일종으로, TV나 영화 속에서 특정기업의 제품이나 브랜드의 이미지, 명칭 등을 노출시켜 관객들에게 홍보하는 광고마케팅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