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게임에서 폭력이 명예를 만날 때
작성자: 크리스토프 카인델(Christoph Kaindel) 작성일: 2012년 6월 21일
[넷브리지(Netbridge)의 컨설턴트인 크리스토프 카인델이 역사 속 전투의 진짜 이유와 방법에 대해 꼼꼼히 살펴본다. 또한 후기 중세 도시의 일상을 통해 RPG나 샌드박스 스타일(sandbox-style) 액션 어드벤처 게임에 그럴듯한 세계관을 만드는데 영감을 줄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샌드박스 스토리텔링(sandbox storytelling)에서, 아이디어는 플레이어에게 재미난 상호작용의 기회가 가득한 크고 열린 세계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플레이어는 철로처럼 선형적인 플롯을 강요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순서대로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만약 세계를 제대로 만들었다면, 스토리와 같은 경험이 나올 것이다.”
이 인용구는 오픈 월드 어드벤처 게임과 RPG(role playing games)의 다음 진화 단계가 될 컨셉을 정리한 어니스트 아담스(Ernest Adams)의 칼럼에서 따온 것이다. 샌드박스 스토리텔링이 제 역할을 하게 만들려면 플레이어 의존적인 사건과 플레이어 독립적인 사건을 조합하라고 아담스는 제안한다. 다시 말해서, 플롯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닌 한, 게임 세계는 플레이어의 개입 없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바뀌어야 한다.
한 사람의 플레이어로서, 나는 오픈 월드 게임을 대단히 좋아한다. 그 해방감, 발견하는 기분, 뜻밖의 일이 일어나는 느낌을 사랑한다. 하지만 역사가로서 나는 게임 세계와 실제 사회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게임 세계는 단순화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나는 많은 게임이 실제 사회 구조에서 영감을 얻어 약간의 복잡성을 추가함으로써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듯한 RPG나 샌드박스 스타일 액션 어드벤처 게임 세계를 만드는데 영감을 줄만한 후기 중세 도시의 일상으로 몇 가지를 여기에 적어보려 한다. 나의 주요 연구 주제가 중세 시대의 일상적 폭력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엄격한 불문율에 따른 명성과 명예를 위한 – 대부분의 경우 치명적이지 않은 – 싸움 말이다.
죽거나 죽이거나
내 생각에 게임에서 폭력의 본질은 <팩맨(Pac-Man)>과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시절에서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여전히 “저기 있는 것들이 당신의 적이다. 총을 겨누고 그들이 너를 죽이기 전에 그들을 죽여라”로 요약될 수 있다. 게임의 폭력은 주로 플레이어 간의, 혹은 플레이어와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적 사이의 싸움이다. 두 경우 모두 적은 그저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제거해야 하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이는 실제 세계의 폭력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등 다양한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다. 사람들은 욕심, 공포, 열망, 증오, 단순한 권태 등에 의해 동기를 부여 받고 다양한 방식으로 난폭한 행동을 하며, 이는 대부분 게임에서 사용되는 것과 다르다. 그렇지만 여전히, 게임 디자이너들이 살해 장면의 비주얼을 자꾸 화려하게 만들려고만 하는 대신에 실제 세상에서 폭력의 다양한 의미와 용도를 생각하는데 시간을 조금만 더 투자한다면, 게임의 폭력과 그 결말이 다양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얄궂게도, 게임 광고나 게임의 과도한 폭력성을 비판하는 사람들 모두 게임의 “현실적”인 폭력 묘사를 강조하고 있다. 순수 비주얼의 관점에서 몇몇 게임은 그럴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게임에서 전투는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은- 액션 영화의 관례를 따른다. 또한 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가능하게 하는 응급처치(medpack)나 생명력 회복 역시, 당연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많은 게임에서 플레이어에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은 꽤 단순하다.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보통 한결같이 공격적인 적들과 그저 의무적으로 싸우는 군인이다. 미션 완수를 위해서는 적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에서의 폭력은 대개 치명적(lethal)이다. 후퇴하거나 항복하는 일은 없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보통 적이 죽거나 플레이어 캐릭터가 죽는 – 그리하여 게임이 끝나고 세이브 파일을 불러와야 하는 – 것만이 가능하다.
이는 선형적 구조의 슈팅 게임에서 꽤 잘 작동하는 패턴이다. 어쨌든, 군인이 적군이나 혐오스러운 외계인과 논쟁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픈 월드 게임들은 실제 세계와 유사한 “살아 숨쉬는” 환경의 인상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는 더 다양한 전투 옵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십 년 전까지 – 어떤 사회에서는 지금까지도 – 명예를 위한 싸움은 적을 다루는 치명적이지 않은(non-lethal) 방식이었다. 이런 명예를 위한 싸움이 실생활에서는 필요 없어졌더라도, 적어도 역사나 판타지 게임 속의 폭력 모델로는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세 도시에서의 일상적 폭력
나는 역사가로서 후기 중세와 초기 근대 유럽에서 일어난 비공식적인 일상 폭력 – 본질적으로 술집 싸움(tavern brawls)과 칼 싸움 - 을 주제로 몇 년간 연구해왔다. 이 주제는 꽤 최근에서야, 그러니까 대략 1995년 즈음부터 범죄 사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했다. 범죄의 역사는 성문법 문서들과 크게 관련이 없고, 사회가 어떻게 범죄에 대응했는가와 더 관련이 있다. 무엇이 범죄로 여겨졌는가, 범인에 대한 박해(persecution)는 어떤 식으로 조직되었는가, 어떤 처벌이 허용되었는가, 누가 처벌받았는가 – 그리고 누가 처벌 받지 않았는가.
중세는 일반적으로 상당히 폭력적인 시기로 간주된다. 후기 중세의 도시는 근대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위험한 장소이긴 하다. 사실 위험했다. 다만, 도시민들에게는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숲이나 도로의 위험에 비견하여 안전하게 인식되었다.
관청은 주로 휴일이나 주말에 싸움이 흔히 발생하는 선술집(taverns), 사창가, 대중목욕탕, 교회 등 붐비는 장소에서 무기를 소지하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종종 단검(dagger)이 사용되긴 하였지만, 싸움이 어느 한 쪽의 죽음으로 끝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겨우 작은 상처를 입는 정도였다. 용기와 싸울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체면을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명예는 개인적 공간, 평판, 가족, 집, 소유물, 권리와 특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되었다. 대중 앞에서 모욕을 당하면 말다툼이나 칼싸움으로 확대되었다. 목적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대중 앞에서 다른 사람을 이기는 데 있었다.
개인의 명예에 대한 맹렬하게 방어하는 일은 필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명예가 손상되는 것을 용납한다면, 더 이상 그와 일을 하려 하는 이가 없을 것이며 그는 사회적 지위를 잃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시의 고위 공무원이나 상류층마저도 공개적인 싸움에 참여했다. 비록 이들은 동등한 지위의 상대하고만 싸웠지만 말이다.
명예의 개념은 집단을 규정하고 그를 다른 집단과 구분 짓는다. 명예를 위한 싸움이 경찰이 없고 중앙권력이 비교적 약한 사회에서 자기 통제의 형태로 조성된다는 연구도 있다. 따라서, 의례적인 싸움(ritualized fighting)은 사회에 있어 파괴적이기보다는 건설적인 요소였다. 자기 주장을 밝히고 적과 “관객”에게 신호를 보내는 용도로 쓰였다. 의례적 싸움은 사회의 모든 계층의 성인 남성들이 사용하는 의사 전달 방식의 한 부분이었다.
중세의 일상적인 갈등은 주로 암묵적인(unwritten) 행동강령에 따랐다. 싸움은 타인을 모욕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멱살을 잡고, 모자를 쳐서 떨어뜨리며(상태 신호), 상대를 땅으로 밀치고, 마지막으로 단도를 뽑아 주먹과 칼로 싸우는 순서로 확대되었다. 움직임은 대개 크고 극적인 경향이 있다. 이런 소동은 관중/목격자를 위해 싸움 기량을 과시하는 것과 같았다. 진짜 싸움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싸움 단계가 확대되다가도 구경꾼의 중재로 깨질 수 있었다.
법은 이런 공공장소에서의 명예 싸움에 대해 꽤 관대하게 다루었다. 만약 누군가 부상을 당하면, 그의 상대방은 상처의 심각성에 따라 벌금을 내야 했다. 만약 싸우는 사람이 죽으면, 죽인 사람은 몇 년 간 도시에서 추방 당했다. 반면에, 비겁하게 뒤에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중죄였으며, 살인자는 주로 사형에 처했었다. 절도는 수치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었으므로 공개적인 폭력(public violence)보다 더 나쁜 것이었으며 처벌은 더 엄했다. 또한, 처벌은 언제나 시민보다 이방인에게 더 가혹했다.
공공의 싸움에 대한 다른, 더 규제된 형식도 있다. 마상(馬上) 시합(tournaments), 검술 도장(fencing school)과 친선경기(exhibition), 무대에서의 싸움(stage fight), 레슬링 경연(wrestling contest), 사법 전투( judicial combat), 그리고 후에는 결투(duel)까지.
그림 1: 펜싱 연습. 뒤쪽의 트레이너/심판은 승부를 중단시키기 위해 지팡이를 사용할 수 있다. 바닥에는 다른 훈련 무기가 있다 – 그림 앞쪽에 특수 보호 장갑과 함께 있는 “검(messer)”에 주목하라. 목판화, 『바이스 쿠니그(Weiss-Kunig)』(1514년 저, 1775년 인쇄) 92a,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 소장
마상 시합, 검술 도장, 레슬링 경연은 비록 현대적 의미의 “스포츠”와는 다르지만 일종의 “격투 스포츠(combat sports)”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백 명의 참가자와 그 수행원들에게 숙소를 제공할 수 있는 건 도시뿐이었기 때문에 13세기부터 마상시합은 언제나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마상시합은 흥미진진한 행사였다. 낮 동안 갖가지 다양한 경연과 마상 창 시합, 그룹 마상 전투(mêlée)와 하마 전투(foot combat)가 벌어졌고, 저녁에는 만찬, 춤과 가장무도회가 있었다. 이런 시합에 참가할 수 있는 건 부자 기사들과 상류층, 귀족들뿐이었다.
반면에, 검술학교(fechtschule)의 펜싱 대회에는 평민들도 참가하여 검(swords), 단검(daggers), 지팡이(staffs)나 기타 다른 무기를 다루는 실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평민들은 보호장비 없이 싸웠지만, 가장 위험한 기술 – 찌르기(thrusting), 칼 끝 부딪치기(pommel strikes), 던지기(throws) – 는 금지되었다. 심판은 불법적인 방법이 사용될 때 개입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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