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게임을 향하여: 기능 이론의 확립
작성자: 키스 버건(Keith Burgun) 작성일: 2012 년 6 월 19 일
우리는 각자 비디오 게임 역사의 발전 방향에 작은 역할들을 하고 있다. 미래에도 진보가 계속 되리란 건 확실하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은, 누군가가 우연히 멋진 기획을 해내면 그걸 수천 번에 걸쳐 복제하는 식으로 이루어진 아주 느리고 무작위적인 발전이었다.
이것이 디지털 게임이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 반복된 패턴이다. 그러니까 아마 앞으로도 “항상” 이런 패턴이리라 짐작하기가 쉽다. 현재 상황에서, 공식적인 게임 개발 방식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 계속해서 그래픽 기술의 수준을 높인다
- 새로운 입력 장치(input device)를 도입해본다 - 바라옵건대, 재미있고 새로운 기획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이건 40 년 전의 게임 개발 방식이었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비디오 게임은 거진 40 년을 발전해 왔는데, 게임 기획은 과연 얼마나 발전했는가? 게임플레이 이론만 보자면
-게임의 ‘규칙’ 면에서 – 우리는 과연 어느 만큼이나 전진했는가?
게임을 구현해내는 기술과 능력은 확실히 진보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게임 기획 감각은 어떤가? 게임 기획이 하나의 독립된 기술로서 진정 성숙했다고 느끼고 있는가? 아니, 그 성숙의 방향으로 가고 있기는 한가? 성숙해지는 방향이란 대체 무엇인가?
네, 어쩌면 이것이 바로 게임 기획에 필요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성장해 오긴 했지만 성숙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게임 기획 암흑시대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과학적 방법론, 계몽주의, 르네상스를 기다리고 있다. 게임이라고 하는 우리의 매체를 유용하고 기능적인 방법으로 이해하기 전에는 결코 달성할 수 없을 목표라고 생각한다.
용어에 대하여
나의 이전 글, “무엇이 게임을 만드는가 What Makes a Game"가 이곳 가마수트라 사이트에서 꽤나 논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먼저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기로 했다. 이 글을 읽지 않으신 분을 위해 요약하자면, 기본적으로 “비디오 게임"은 여러 개의 상호작용(interactive)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호작용 시스템을 몇 개의 하위 시스템으로 나누려고 시도했었다. 특히 “경합 contest”, “퍼즐 puzzle”, “게임 game”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제시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의 “상호작용 시스템의 유형"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가장 큰 오해는 이 가운데 “게임"이라는 용어에 대한 나의 정의가 혼란스러워서 생긴 것이었다.
나는 게임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무시하려 했던 게 아니라 게임에 대해 “부가적인” 정의를 새롭게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기존의 정의와 좀 더 비슷하긴 하지만 “퍼즐"과 “경합"에 대해서도 새롭고 더 명확한 정의를 제시해 놓았다). 이런 용어들이 여러 종류의 시스템을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제시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꼭 “게임"이란 용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게임”이 내가 제시하는 그 특정한 유형 시스템, 즉 “다각도의 의사 결정이 수반되는 경합"을 설명하는 최적의 영어 단어라고 생각한다.
나의 논지는 “비디오 게임” 안에는 뚜렷이 구분되는 여러 유형의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이견의 여지가 없다. <The Path> 와 <스트리트 파이터 Street Fighter>가 다른 류의 게임이라는 데에는 거의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이 둘은 존재 목적부터가 다르고, 서로 다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서로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지칭하기 위해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 혹은 상호작용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 가 다양한 종류의 시스템 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게임에 대해 생산적으로 이야기하기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게임"이라는 단어에 너무나 많은 정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이 함축되어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같은 단어를 다르게 정의한 때문에 논쟁이 발생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한 단어의 ‘색감(coloring)’이나 ‘맛(flavor)’을 각기 다르게 해석해서 서로 다른 느낌을 받기도 한다. 알다시피 비디오 “게임"이란 것이 대단히 거대한 문화적 현상이기 때문에, “게임"이란 단어에 문화적, 개인적인 배경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것이다.
얼핏 보기엔 여러 평론가들이 나의 논리에 반대 의견을 표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이 아니었으며, 전적으로 이 단어 정의와 관련된 문제였다. 예를 들어 아라 쉐리넌(Ara Shirinian)은 “게임"에 대해 통용되는 기술적(descriptive) 정의에 근거하여, 다각도의 의사 결정(ambiguous decision-making)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논리로 나의 의견에 반대했었다. 기타 히어로(Guitar Hero)에는 이런 요소가 전혀 없지만, (현재의 정의에 따라서) “게임"이라고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다각도의 의사 결정이 “게임"의 본질이라는 나의 주장은 무너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달리, 나의 정의는 물론 규범적인(prescriptive) 것이다. 기타 히어로에 다각도의 의사결정이 없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기타히어로는 나의 기준에서 게임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물론 기타 히어로가 “기분 전환이나 재미를 수반하는 활동”이라는 “게임”의 정의(메리엄 웹스터 사전 상의 첫번째 정의)를 충족한다는 점에는 분명히 동의하지만, 이 정의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제이슨 배커(Jason Bakker)는 내가 (내가 정의한) 게임을 (다른 사람들이 정의한) 게임보다 우위에 놓으려 한다고 했다.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면 그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그들이 “게임"이란 단어에 대해 낭만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의 “게임성"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것이 하나의 공격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물론 내 기준이든 다른 사람의 기준이든, “게임"의 기준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해서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레고는 게임이 아니지만, 나는 그저그런 2D 격투게임을 하느니 레고를 가지고 노는 편이 훨씬 좋다. 그 격투게임이 어떤 정의에 의해서도 분명히 “게임"의 기준을 충족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나보다 먼저 이 문제를 지적한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이 논의의 출발점이 되는 “게임”이란 단어에 대해 확고한 정의를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정의를 내놓았고 많은 정의가 반복되었다. 아직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디지털 게임의 역사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정의는 거기에 한 마디를 덧붙인 것뿐이며,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위협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나의 정의는 하나의 도구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전에 나왔던 수많은 정의와 달리 나의 정의는 게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게임이 어때야 한다는 철학적 규범일 뿐이다. 나의 정의는 하나의 렌즈이며 패러다임으로, 이를 통해 상호작용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많이 받았던 반응은 “현재의 정의도 훌륭하다”라는 맥락의 내용이었는데, 새로운 정의가 필요치 않다는 입장이었다. 그들의 말이 맞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게임에 대한 현재의 사전적인 정의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제안한 정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게임 기획자나 게임 저널리스트, 혹은 이러한 시스템을 좀 더 깊고 유용한 방향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현재의 “비디오 게임”이라는 개념 안에 여러 가지 다른 유형의 시스템이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기능적 이론 발전에 필요한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슬프게도 (그러나 예상대로), 게임 업계라는 이 좁은 바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 다소
반-진보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게임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전진은 곧 후퇴라는 주장이나, 단어에 이미 너무 많은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의 생각
“무엇이 게임을 만드는가"가 공개된 날 밤, 나는 유명 블로거이자 게임 기획자인 안나 앤트로피(Anna Anthropy)의 강연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 대학 게임 센터에 방문했다. (안나는 Auntie Pixelant 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업적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 ‘To the right, Hold on Tight’를 읽어보길 바란다. 그의 글 중 가장 유용하면서 진지한 글로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Super Mario Brothers)의 훌륭한 레벨 디자인에 대해서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안나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게임업계에 필요한 것은 외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어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새 책에서 말하는 제 1 주제이기도 하다).
그녀에 따르면, 우리의 문제는 “근친교배”가 만연하여 우리끼리만 서로 대화한다는 점이고,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려면 새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최대한 많이 수혈 받을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이 기본적으론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나의 관점으로 이것은 결국 “소 뒷걸음질로 개구리 잡는 spray-and-pray” 방식의 해결이다. “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걸 계속 한다, 더 많이!” 해서, 얻어 걸리기를 기다리는 방식 말이다. 만약 오천 명의 사람들이 내일 당장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게 전부 타워 디펜스나 퍼즐 플랫폼이거나, 아니면 팜빌(FarmVille)의 유사품이라면, 그게 “나쁘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할까?
물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전제 하에, 최소한 몇 가지는 혁신적인 게임이 나오리라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혁신적인 건 아마 극소수일 것이며, 그게 왜 좋은 게임인지 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이고, 안나도 자기 주장에 대해서 어떠한 방법도 제시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의 논지는 “퀄리티나 완성도, 혹은 네가 뭘 만들고 있는지를 걱정하지 말고 그저 만들어라" 라는 쪽에 가깝다. 이것은 아마 개개인에게는 어마어마하게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모두에게 자기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도록 격려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게임 기획을 놓고 볼 때에는, 이 때문에 우리가 잘못된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인물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 내고, 그 중 몇몇은 훌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문제는 좋은 아이디어가 모자란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이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에서 오는 것이다. 낚시하는 법을 아는 것이 물고기 한 마리를 더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나는 오랫동안 게임은 충분히 많으며, 더 나은 게임이 필요할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굳이 만든다면 적게 만들어야 더 잘 만들 수 있다는 쪽이다. 게임은 태생적으로 한 달 안에 소비하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하나의 게임이 인생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다. 전 생애에 걸쳐서 말이다. 그림 그리는 법이나 피아노 치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예술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훌륭한 게임은 평생의 취미가 되어야 하며, 6 개월 동안 미친 듯이 몰두한 뒤 손을 놓을 땐 후회하는 물건이 되어선 안 된다. 한 달 안에 버려질 게임을 만드는 것은 한 달 안에 버려질 악기를 만드는 것과 같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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